진정한 쉼표를 찍는 법
2학년이
끝난 겨울, 나는 문득 해외 인턴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국내/해외 대학원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데, 결국 한 번쯤 해외에서 장기간 체류해봐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지에서
홀로 지내본 경험이 없던 나는 해외생활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이웃나라인 일본으로의 인턴은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나의 학업계획 상 장기간의 교환학생은 부담스럽고, 강의를 듣기보단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원했기 때문에 포탈의 공지를 보자마자 지원을 결심했다. 곧바로 가고 싶은 연구실을 조사했는데, 나는 일본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지가 가장 큰 기준이었다. 마침 외국인 학생이 있으면서도 관심있는 분야의
연구실이 있어 연구실을 결정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1지망 연구실에서 인턴을 할 수 있었고, 연구와 첫 해외생활에 대한
기대를 품고 일본에 도착했다.
Wet lab에서 두 달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 달 동안 실적을 내고 오겠다는 마음보다는 새로운 연구를 경험하고, 해외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연구나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나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내던 대전을 떠나 먼 타지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일본생활은 너무나도 성공적이었다. 평일에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항상 연구실에 있었지만, 성과를 내야한다는 부담감이 없으니 연구와 실험 자체를 즐길 수 있었고, 퇴근 이후의 시간은 맛있는 저녁을 먹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도 하며 나만의 시간들로 즐겁게 채울 수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나의 시간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큰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구실
생활은 특히 만족스러웠는데, 교수님과 사수님이 연구 지도에 적극적이셨으며 랩미팅이나 외부 학회/세미나 등에도 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대가인 MIT에 Buchwald교수님이 일본
동경대에 방문하여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세미나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그 덕분에 실험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업적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내가
화학에서 정말 좋아하는 분야를 찾을 수도 있었다.
주로 평일 오전부터 저녁까지는 연구실에서 지냈는데, 그
시간 동안은 거의 사수님과 함께 그날그날의 실험을 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실험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사수님이 옆에서 자세히 알려주셨기 때문에 그 어떤 때보다 실험에 대한 이해와 스킬을 많이 높일 수 있었다. 또 내가 제안하는 연구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항상 같이 진지하게 고민해주시는 과정 속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의 프로젝트는 천연물의 trimer를 flow synthesis로 합성하는 것이었다. 이미 dimer를 합성하는 방법을 연구실에서 찾은 상태였고, 나는 그것을
확장시켜 trimer를 합성하는 것이었다. 두 달 간의 실험
끝에 결과적으로 합성에는 성공하였으나, 짧은 시간 탓에 실험을 많이 하지 못해 최적화까지 진행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구실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랩 미팅 뿐만 아니라 매주 학생이
돌아가면서 유기 합성 관련 문제를 게시판에 걸어 놓으면 일주일 동안 나머지 학생들이 풀고 각자 답을 제출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 점 또한 내겐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연구실에 있다 보면
각자 자신의 연구 주제에만 몰두하고 학부생 때처럼 문제를 풀기보다 실험만을 반복하게 되는데, 일주일에
한 문제 씩 다같이 푸는 게 실험과는 색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았다.
파견 기간 동안 연구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였다. 주말과
여름 휴가 때에는 관광지와 도쿄 근교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숙소는 시부야까지 약 40분 정도 소요됐는데, 경기도민인 나에게는 나름 가깝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시부야나 하라주쿠, 오모테산도로 많이 놀러다녔다. 가끔은
퇴근 후에 시부야를 방문할 정도로 접근성이 좋아 자주 방문했다. 신주쿠, 긴자, 아사쿠사 등 다양한 장소에 방문했지만, 한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나카메구로와 지유가오카가 가장 정감이 가는 동네였다. 그래서 종종 나카메구로와 지유가오카의 카페에 방문하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일본에는 8월 중순 쯤에 전체적으로 여름 휴가가 있는데,
우리 연구실 또한 일주일 반정도의 휴가가 주어졌다. 그 기간 동안 하코네, 가마쿠라 등의 근교로도 여행을 다녔다. 함께 카이스트에서 파견 온
사람들과도 자주 만났고, 한 번은 후지산이 잘 보이는 작은 마을인 가와구치코에도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오사카 같이 먼 곳으로 여행을 갈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더운 날씨에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본의 여름은 높은 온도와 습도로 정말 덥다. 여름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꼭 시원한 옷을 준비하길 바란다.) 다른
지역을 방문하지 못한 것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도쿄 곳곳을 둘러봤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일본이라는 나라에 개인적으로
큰 기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해외 인턴을 경험해보고 싶었고,
그에 대한 좋은 프로그램이 시기 적절하게 등장했기 때문에 무작정 지원을 했던 점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두 달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일본의
연구실이나 학업 분위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본의 음식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사람을 직접 경험하며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학업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배운 점이 많았던 시간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 지신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었으며, 나의
진로에 대한 확신과 계획도 가질 수 있었다. 그저 무의미한 공백과 같은 휴식이 아닌, 나의 대학생활에 진정한 쉼표를 찍는 방법을 알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 해외에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얻을 수 없었던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대학생활의 두 달을 이 프로그램에 꼭 투자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쩌면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도 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으니 자신이 과연 이 프로그램에 적합할까라는 고민에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면 주저없이 도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