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일본 생활

 사실 프로그램에 지원할 때부터 목표는 정해져 있었다.

“일본사람처럼 지내다오기”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유명한 관광지도 다니지 않았지만, 일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다.

 풋살을 좋아하는데 일본에서도 할 수 있을까해서 축구화를 챙겨갔다. 약간의 노력 끝에 온라인으로 풋살 참가를 예약하고 찾아갔다. 낯선 그라운드에서 뛰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2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갔고, 힘들어서 음료수 뽑아먹느라 있던 현금을 다썼다.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어서 재밌었고, 그동안 답답했던 감정을 풀며 쾌감을 느꼈다. 그 뒤로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운동했고, 같이 뛰면서 사람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배우고 싶어 문화센터를 찾아가 일본화 수업을 등록했다. 첫 수업 나갈 때는 또래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만 계셨다. 다행히도 반갑게 맞아주셨고, 선생님이 기초부터 가르쳐주셨다. 일본어를 못하는 제자와 영어를 못하는 선생님이 만나 소통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빠른 템포의 평소 생활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집중력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식당을 다양하게 돌아다니기 보다는 몇 군데의 단골이 되고 싶었다. 첫 번째 목표는 돈까스. 나는 돈까스를 아주 좋아하는데, 연구실 근처에 후기가 좋은 곳이 있어서 찾아갔다. 기세 좋게 등심돈까스 세트를 시켰고, 너무 맛있었다. 좋은 고기를 쓴다는 것이 느껴졌고, 레시피에서 철학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다만 양이 많아서 조금 남기고 말았다. 이후 일본 친구가 음식을 남기면 예의없는거라고 알려주었고, 살짝 걱정을 하면서 다시 찾아갔다. 별로 신경쓰지 않으시는 거 같았고, 돈까스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셨다. 이후 뭔가 안풀리는 날에 자주 갔고 귀국하는 주에 못간게 아쉬울 뿐이다. 갈 때마다 다른 단골손님들이 담배를 태우시며 앉아계셨는데, 어둡고 낡은 가게 분위기랑 맞물려 인상적이었다.

동경공대 측에서 셰어하우스를 지원해주셨는데, 바로 앞 카이센동 가게에도 일주일에 세번씩은 갔다. 카이센동은 해산물 덮밥으로, 주로 밥 위에 회를 얹어서 간장과 와사비랑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솔직히 처음에 무슨 음식 파는지 모르고 갔고, 음식 받았을 때는 좀 당황하기도 했다. 항상 포장해와서 방에서 먹었는데, 처음 몇 번은 너무 비려서 콜라랑 먹거나 고춧가루 뿌려서 겨우 다먹은 기억이 난다. 물론 나중에는 아무 문제 없었고, 하도 자주가서 주인장 아저씨도 나를 기억하시고 곱빼기로 주셨다.

연구실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싶었고, 어디든 불러주면 일단 따라가고 생각했다. 한번은 낚시하러 간다길래 냉큼 붙었다. 그 친구는 연구주제가 물고기의 운동인데, 사온 물고기는 항상 힘이 없어서 본인이 직접 낚는다고 했다. 지하철타고 꽤 오랜 시간 타고 도착한 곳은 갑천만한 강이었다. 그때 날씨가 꽤나 더웠고, 다리 아래 그림자로 숨자마자 위에서 비둘기 똥이 떨어졌다. 도쿄 비둘기는 다 여기 모인거 같았고, 잊을만하면 떨어지는 똥을 피하는게 일이었다. 심기일전하여 나도 한마리 낚는데 성공하여 학교에 당당히 돌아왔다.

또 한번은 연구실 석사 친구들과 라멘을 먹으러 갔다. 요코하마에 있는 곳이었는데, 한 명이 학부 때부터 매주 가는 곳이라고 했다. 당일에 교수님과 미팅이 늦게 끝났는데 마감이 얼마 안남아서 엄청 뛰어서 지하철 타고 내려서 또 한참 뛴 기억이 난다. 일본은 라멘의 본 고장답게 면의 굵기도 다양하고, 짠맛의 정도도 손님이 고를 수 있다. 국물이 진하고 맛있었으나 다 기본으로 선택했는데도 너무 짰다. 우리가 라스트 오더여서 그런지 많이 담아주신 거 같았고, 아무리 먹어도 줄지가 않는 기분이었다.

일본에서 보낸 여름방학은 재미있었고, 지겨운 학교에서 벗어나는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만 만났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일본에서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