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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여름학기 일본 동경공대 프로그램 참여 수기 _ 백혜민
2024-12-10

Connecting the dots


언젠가부터 막연히 해외에서 연구나 인턴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해외 생활 자체에 대한 로망보다는, 해외 연구실에 속해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다. 물론 수업을 듣는 교환학생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연구 인턴 같은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싶었다. 원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영어권 국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 초, 인생 처음으로 일본에 방문한 후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아쉬워하던 차에 이 프로그램의 지원 공지를 발견했다. 간만의 해외여행이라 들뜬 것도 있었겠지만 일본에서 지내는 내내 이 곳에 좀 더 오래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거웠다. 마침 일본에서 2달 간 지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수업만을 수강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에 소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끌렸다. 졸업 계획 상 정규학기에 파견을 가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여러모로 이 프로그램이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겨울학기의 일정으로 지원 기간이 조금 촉박했지만 서류를 다 준비할 수 있었고, 한국에서 개별연구를 했던 것과 비슷한 분야의 1지망 연구실에 배정받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가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연구가 과연 나의 적성에 맞을지, 해외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한국에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를 할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회화에 대한 자신감도 기를 수 있다면 완벽할 것 같았다.

 

연구 주제는 H1-Fr/PhC를 이용한 In-cell Protein Crystallization이었다. 이전에 화학과 랩에서 개별연구를 하며 Protein Assembly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동경공대 홈페이지에서 지망 연구실을 조사하며 Protein crystal cage에 대해 연구하는 이 랩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연구실은 오전 9 30분 모닝 미팅 전까지 출근하고, 오후 6시 이후 자유롭게 퇴근하는 시스템이었다. 숙소에서 연구실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렸기에 아침마다 7 30분에 일어났고, 퇴근 후 숙소에 도착하면 7~8시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평일에는 대부분의 시간에 랩에 있었으나 가끔 일찍 퇴근하는 날 시부야에 가기도 하고, 퇴근이 늦더라도 숙소나 학교 근처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스스로 모든 실험을 계획하고,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이번 경험이 처음이었다. 정해진 한 분의 사수님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여러 개의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때그때 관련 분야를 잘 아는 대학원생분들이 간단히 프로토콜을 알려주는 형식이었다. 기본적으로 연구에 있어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먼저 질문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분위기였다.

이전에는 한 번의 개별연구 경험밖에 없었기에 당시에는 사수님께 새로운 지식을 많이 배우는 데에 집중했었다. 사수님께서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주실 때는 스스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번 학기에 막상 혼자 실험을 진행하다보니 SDS-PAGE를 할 때조차 많은 troubleshooting이 필요했다. 이를 통해 실험에 실패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방법을 고안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고, 생각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학원생분들과 논의하며 과학적 의사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지만, 랩분들이 신경써주신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첫 주 금요일에는 나를 위한 웰컴파티를 준비해주셨는데, 초반에는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걱정이 있었지만 이 파티 이후 괜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랩에 중국인 학생들이 많아 대부분이 원래도 영어로 소통하고 있었기도 하고, 교수님과 학생들 모두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봐주셔서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다. 랩 학생 몇 명과 친해지게 되어 라인 아이디도 주고받고, 10월에 도쿄 여행을 갈 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의외로 영어 실력 향상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 부분은 이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첫 주말에 프로그램 참여 학생들과 동경공대 학생 2명이 함께 아사쿠사에 가는 일정이 있었다. 동경공대 학생들은 카이스트로 캠퍼스아시아 프로그램을 다녀왔거나, 곧 다녀올 예정이었고 함께 어울린 모두가 영어를 잘했기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멤버에서 종종 각자의 친구들을 데려오며 일본, 중국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이 때 친해진 친구들과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다녀오거나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확인하고자 했던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험에서 얻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 전까지는 빨리 졸업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군가 늦었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이미 한 학기 휴학을 했었기에 조금 뒤쳐진 건 아닐까 하고 최대한 빠르게 졸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2달 간의 생활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자, 그간 내가 편협한 사고에 일정 부분 갇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중국, 일본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며 지금껏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수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짧다면 짧은 10주 간의 경험을 통해서도 세상을 보는 시각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끼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며 나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진로 등 여러 고민들의 결론을 짓지는 못했지만, 학부 생활에 있어 졸업 시기에 지나치게 큰 의의를 두기 보다는 이 시기에만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다른 해외인턴십 프로그램 등에도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학부 생활 동안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아보려 한다. ‘쓸 모 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원래의 가치관처럼, 경험이라는 점들을 잇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있으리라 믿는다.

대학생활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하거나, 진로에 대해 막연히 고민하고 있는, 혹은 그저 방학 동안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은 모든 학생들에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영향은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다.